냉장고 속 국도 식중독? 재가열 온도보다 식히는 속도

냉장고 속 국도 식중독? 재가열 온도보다 식히는 속도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오랫동안 국을 ‘완전히 식혀서’ 냉장고에 넣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녁에 끓인 미역국을 냄비째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두고, 자기 전에야 냉장고에 넣었는데요. 뜨거운 걸 바로 넣으면 냉장고가 상한다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넣어둔 국은 다음 날 한 번 팔팔 끓이면 안전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식중독 예방 자료를 하나씩 확인해 보니, 제 습관에서 가장 위험한 부분은 냉장고도, 재가열 온도도 아니었습니다.

냄비째 천천히 식어가던 그 몇 시간이었습니다.

“냉장고에 넣어둔 국도 식중독에 걸린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다만 그 이유가 ‘냉장고 안에서 국이 상해서’라고 읽히기 쉬운데요. 식약처가 경고하는 시나리오는 조금 다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 위험 구간은 냉장고에 들어가기 전, 큰 냄비째 실온에서 서서히 식는 시간입니다.
  • 그래서 식힐 때는 ‘오래’가 아니라 ‘빨리’ — 2시간 안에, 얕은 용기로 나눠서 식힙니다.
  • 남은 음식 재가열은 속까지 75℃ 이상으로 해야 하지만, 끓여도 파괴되지 않는 독소가 있어 잘못 보관한 음식을 되살려주지는 못합니다.

이 글에서는 이 세 가지를 공식 기관 자료로 하나씩 따져보겠습니다.


냉장고에 넣어둔 국, 식중독은 어디서 생길까요

식약처가 대량 조리 음식에 대해 반복해서 경고하는 균이 있습니다. 퍼프린젠스(Clostridium perfringens)입니다.

이 균의 특징은 열에 강한 아포를 만든다는 점입니다. 아포는 고온·건조처럼 살기 어려운 환경에서 균이 만들어 내는 일종의 휴면 상태인데요. 식약처 설명대로 옮기면, 퍼프린젠스는 열에 강한 아포를 만들어 살아남는 특징이 있어 “다른 식중독균과 달리 충분히 끓인 음식이라도 다시 증식할 수 있다”고 합니다.

흰 타일 벽과 커다란 창으로 빛이 드는 밝은 부엌, 가스레인지 옆에 놓인 흰색 냉장고와 아무것도 올려 두지 않은 조리대
Photo: Alex Tyson / Pexels

그럼 언제 다시 깨어날까요.

식약처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국, 고기찜 등을 대량으로 끓이고 그대로 실온에 방치하면 솥 내부 음식물은 공기가 없는 상태가 되고, 서서히 식게 되면 퍼프린젠스 아포가 깨어나 증식한다는 것입니다. 갈비찜을 예로 든 2023년 자료에서는 대량으로 조리해 실온에 두어 60℃ 이하가 되면 산소가 없는 솥 내부에서 살아남은 아포가 다시 증식할 수 있다고 적었습니다.

퍼프린젠스는 산소가 없는 조건과 43~47℃에서 잘 자라는 혐기성 세균입니다. 큰 냄비 한가운데가 딱 그런 환경입니다. 겉은 식어도 속은 한참 동안 따뜻하고, 공기는 잘 닿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순서를 다시 그려보면 이렇습니다.

문제는 냉장고 안이 아니라, 냉장고에 들어가기 전입니다.

냄비째 천천히 식는 동안 균이 늘어나면, 그 뒤에 냉장고에 넣어도 이미 늘어난 균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냉장고는 그 상태를 이어받을 뿐입니다.

퍼프린젠스는 여름만의 균이 아닙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이 균은 이름과 달리 ‘여름 식중독균’이 아닙니다.

식약처가 2021년에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6~2020년 퍼프린젠스 식중독은 총 46건, 환자 1,584명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3~5월에 24건(46건 중 52%), 환자 771명(1,584명 중 49%)이 몰렸습니다. 오히려 봄에 가장 많았던 것입니다.

계절보다는 대량으로 끓여 두는 음식의 균이라고 이해하시는 편이 정확합니다. 국, 고기찜, 갈비찜처럼 한 솥 가득 끓여 두는 음식들 말입니다.

남은 국을 냉장고에 넣기까지 네 단계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배열한 흐름도 — 실온 2시간 이내, 얕은 용기 여러 개에 나눠 담기, 찬물·얼음물에 받쳐 저으며 식히기, 5℃ 이하 냉장


2025년 식중독 통계, 9월까지 방심하면 안 되는 이유

글을 쓰는 지금은 9월 중순입니다. 더위가 한풀 꺾여서 조금 느슨해지기 쉬운 시기인데요. 최신 통계는 반대를 말합니다.

식약처가 2026년 8월 7일 발표한 「2025년 식중독 통계」 내용입니다.

항목 2025년 수치 비율의 기준
전체 발생 319건 · 환자 9,780명 전년(265건·7,624명) 대비 건수 20%, 환자 28% 증가
여름(6~8월) 107건 · 환자 3,551명 전체 319건의 34% · 전체 환자 9,780명의 36%
9월 45건 · 환자 1,475명 전체 건수의 14% · 전체 환자의 15% (월별 최다)
살모넬라 79건 · 환자 4,248명 전체 319건의 25% · 전체 환자의 43% (원인병원체 1위)
발생 장소: 음식점 192건 전체 319건의 약 60%

눈에 띄는 건 9월입니다. 2025년 월별로 가장 많이 발생한 달이 한여름이 아니라 9월이었습니다.

기간을 넓혀 봐도 비슷합니다. 식약처가 2026년 7월 말에 밝힌 자료에서는 2021~2025년 7~8월 발생이 연평균 78건, 전체 발생 건수의 약 26%였고 환자 수로는 전체의 약 31%를 차지했습니다.

식약처는 폭염이 이어지는 7~8월에는 살모넬라, 병원성대장균 같은 세균성 식중독이 주로 발생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세균성 식중독균은 32~43℃에서 가장 활발하게 증식한다고 합니다. 뚜껑 덮인 채 식어가는 큰 냄비 속은 이 온도대를 아주 천천히 지나갑니다.


식힐 때는 ‘오래’가 아니라 ‘빨리’입니다

이제 가장 흔한 조언을 살펴보겠습니다.

“뜨거운 음식을 그대로 냉장고에 넣으면 냉장고 온도가 올라 다른 음식까지 상한다.”

이 말에는 공식 근거가 있습니다. 식약처도 “뜨거운 음식을 바로 냉장고에 넣으면 냉장고 내부 온도가 상승하여 보관 중인 음식도 상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식혀서 보관”하라고 안내합니다. 영국 식품기준청 계열 안내도 뜨겁거나 따뜻한 음식을 냉장고에 넣지 말라고 합니다.

다만 이 조언에는 시간 조건이 빠져 있기 쉽습니다.

이 말을 “그러니 완전히 식을 때까지 실온에 두자”로 받아들이면, 앞에서 본 퍼프린젠스 시나리오에 그대로 들어갑니다. 식약처 자신이 경고하는 ‘대량 조리 → 실온에서 서서히 냉각’의 경로입니다. 저처럼 냄비째 몇 시간 두는 습관은 이 조언을 지킨 게 아니라, 절반만 지킨 셈이었습니다.

그리고 “냉장고 온도가 급격히 올라 냉장고 전체가 위험해진다” 같은 표현도 자주 보이는데요. 가정용 냉장고에 뜨거운 국을 넣었을 때 내부 온도가 몇 도, 몇 시간 오르는지를 측정한 1차 자료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정도에 대한 말은 보태지 않겠습니다.

기관마다 표현은 다르지만, 결론은 같습니다

이 대목은 기관마다 말이 조금씩 다릅니다. 한쪽만 옮기면 오해가 생겨서 나란히 놓아 보겠습니다.

  • 식약처·영국: 식혀서 넣으라. 영국은 1~2시간 이내에 냉장고에 넣으라고 덧붙입니다.
  • 미국 농무부(FSIS): 뜨거운 음식은 냉장고에 바로 넣어도 되고, 얼음물이나 찬물에 담가 빠르게 식힌 뒤 넣어도 된다. 단, 큰 냄비의 국은 식는 데 오래 걸려 균이 늘어날 수 있으니 작은 용기로 나눠 빨리 식히라고 합니다. 조리 후 2시간 이내에 얕은 용기에 담아 4.4℃(40℉) 이하로 냉장하라는 것입니다.

얼핏 반대처럼 보이지만, 겹치는 부분을 추려보면 결론은 하나입니다.

큰 냄비째 뜨겁게 넣지도, 실온에 오래 두지도 말고, 나눠서 빨리 식혀 넣는다.

“완전히 식을 때까지 실온에 두라”고 권하는 공식 기관은 확인한 자료 중에 없었습니다.

빨리 식히는 법, 네 가지

실제로 부엌에서는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1. 실온에 두는 시간은 2시간 이내로. WHO는 조리한 음식을 실온에 2시간 넘게 두지 말라고 하고, 식약처도 조리한 음식은 가급적 2시간 이내에 섭취하라고 안내합니다. 미국 CDC는 기온이 32℃(90℉) 이상이면 1시간 이내로 더 짧게 잡습니다. 한여름 부엌이라면 1시간 쪽을 권해 드립니다.
  2. 여러 개의 얕은 용기에 나눠 담기. 식약처도 “가급적 여러 개의 용기에 나눠 담으라”고 안내합니다. 양이 적고 얕을수록 속까지 빨리 식습니다.
  3. 찬물·얼음물에 받쳐 저어주기. 식약처는 차가운 물이나 얼음을 채운 싱크대에 올려놓고, 산소가 골고루 들어갈 수 있도록 규칙적으로 저어서 식히라고 합니다. 산소를 싫어하는 퍼프린젠스를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방법입니다.
  4. 5℃ 이하로 냉장. 식약처 식중독 예방 6대 수칙의 기준입니다. 냉장고 온도는 온도계로 한 번 확인해 두시면 좋습니다.

밝은 베이지 바탕 위에 뚜껑을 열어 둔 얕은 도시락 용기, 칸을 나눠 국수와 브로콜리를 담아 두고 뚜껑을 옆에 놓은 모습
Photo: Towfiqu barbhuiya / Pexels

천천히 식을수록 균은 더 늘어납니다

냉각 속도의 영향을 수치로 보여준 연구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Andersen 등(J Food Prot, 2004)은 가열한 칠면조 다짐육에서 장독소를 만드는 퍼프린젠스 균주를 대상으로, 65℃에서 10℃까지 식히는 데 걸리는 시간을 바꿔봤습니다. 4·5·6·7시간이 걸리면 균이 각각 0.3·1.0·1.7·2.0 log 늘었습니다. 2 log는 약 100배입니다. 연구진은 65~10℃ 구간의 최대 허용 냉각시간으로 5시간을 제안했습니다.

다만 이건 특정 식품, 특정 균주, 진공포장이라는 실험 조건의 결과입니다. 우리 집 국에 그대로 옮겨 “몇 시간까지 괜찮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이 연구에서 가져가는 메시지는 하나입니다. 천천히 식을수록 균이 늘어난다는 방향성입니다.


냉장고는 균을 멈추지 않고 늦출 뿐입니다

두 번째 흔한 말은 이것입니다. “여름철 식중독균은 냉장 온도에서도 자란다.”

절반만 맞는 말인데요.

WHO의 ‘더 안전한 식품을 위한 5가지 열쇠’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5℃ 이하 또는 60℃ 이상으로 유지하면 미생물의 증식이 느려지거나 멈춘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일부 위험한 미생물은 5℃ 이하에서도 자란다고 덧붙입니다.

그러니 정확하게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냉장은 균을 죽이지 않고 늦출 뿐이며, 일부 균은 냉장에서도 천천히 자랍니다.

냉장 온도에서도 자라는 균

확인된 대표적인 균은 세 가지입니다.

  • 리스테리아: 미국 FDA는 리스테리아가 냉장고 온도에서도 자랄 수 있고, 냉장고에 오래 둘수록 증식 가능성이 커진다고 설명합니다. 냉장고는 4℃(40℉) 이하, 냉동은 -18℃(0℉)를 권합니다.
  • 여시니아: 저온에서 자라는 세균으로, 5℃에서 증식하는 것이 연구로 확인됐습니다(Goverde, 1998).
  • 일부 저온성 바실루스 세레우스: Jovanovic 등(Toxins, 2022)의 실험에서 독소 유전자를 가진 균 집락 121개 가운데 4℃에서 94개(77%), 7℃에서 104개(86%)가 자랐습니다. 다만 4℃에서는 구토독소를 만든 균이 하나도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실험실 조건의 결과라, 가정 냉장고 속 국에서 실제로 얼마나 늘어나는지로 옮겨 말할 수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주요 원인균은 냉장에서 거의 못 자랍니다

반대쪽 사실도 같이 보셔야 균형이 맞습니다.

예를 들어 병원성대장균 O157:H7은 소고기 실험(Huang, 2010)에서 5℃에서는 증식이 관찰되지 않았고, 10℃에서도 미미했습니다. 해당 식품과 실험 조건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냉장에서도 자라는 리스테리아나 여시니아는 여름에 특징적인 균이 아닙니다. 한국의 여름 식중독을 주도하는 살모넬라·병원성대장균의 핵심 위험은 실온 방치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여름 식중독은 냉장고 안보다 냉장고 밖에 둔 시간에서 더 많이 결정된다고요. 냉장고는 그 시간을 끝내는 장소입니다.

냉장 보관 기간은 기관마다 다릅니다

냉장이 ‘늦춤’이라면, 결국 얼마나 둘지가 중요해집니다. 이 부분도 기관마다 기준이 다릅니다.

  • 미국 농무부(FSIS): 조리한 남은 음식은 대부분 3~4일 이내에 먹으라고 합니다.
  • 영국 식품기준청: 48시간 이내에 먹고, 그러기 어려울 것 같으면 냉동하라고 합니다.

국내 보도 중에는 ‘식약처 기준 3~4일’이라고 소개하는 기사도 있는데요. 이번 조사에서 식약처 1차 문서로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기관을 밝혀 두 기준을 함께 적어 둡니다. 저는 더 짧은 영국 쪽 기준을 기본으로 삼고, 그 안에 못 먹을 것 같으면 처음부터 한 끼 분량씩 나눠 냉동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18℃부터 100℃까지 실제 간격으로 그린 세로 온도 막대 도해 — 5℃ 이하 냉장 구간, 5~60℃ 위험 구간, 32~43℃ 최대 증식 구간, 60℃ 이상 구간을 색으로 구분해 표시


남은 음식 재가열 온도, ’75℃ 1분’은 조리 기준입니다

이제 제목에서 말씀드린 온도 이야기입니다.

인터넷에는 “남은 음식은 중심 온도 75℃에서 1분 이상 끓이라”는 문장이 많이 돌아다닙니다. 숫자 자체는 식약처 자료에 있는 숫자입니다. 그런데 어떤 상황의 기준인지가 섞여 있습니다.

식약처 식중독 예방 6대 수칙의 ‘익혀먹기’ 항목은 이렇습니다.

육류는 중심온도 75℃, 어패류는 85℃에서 1분 이상 익히기.

이건 처음 조리할 때 속까지 익히는 기준입니다.

남은 음식을 다시 데우는 기준은 표현이 따로 있습니다. 식약처는 남은 음식을 냉장 또는 냉동 보관했다가 75℃ 이상에서 다시 가열한 후 섭취하라고 안내합니다. 재가열에 ‘1분’을 붙여 명시한 식약처 원문은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구분 기준 출처
처음 익힐 때(조리) 육류 중심온도 75℃ 1분 이상, 어패류 85℃ 1분 이상 식약처 6대 수칙 ‘익혀먹기’
남은 음식 다시 데울 때 75℃ 이상으로 재가열 식약처 안내
국·스튜 끓어오를 때까지 가열해 70℃ 도달 확인 WHO
남은 음식 재가열 음식 가운데가 70℃에서 2분, 재가열은 한 번만 영국 정부(식품기준청)
남은 음식 재가열 74℃(165℉), 국·소스는 끓어오를 때까지 미국 농무부(FSIS)

국·찌개는 ‘전체가 끓어오를 때까지’

그래서 집에서 쓰기 좋은 문장으로 바꾸면 이렇습니다.

남은 음식은 속까지 75℃ 이상이 되도록 데우고, 국·찌개는 전체를 저어가며 끓어오를 때까지.

냄비 가장자리에서 보글보글 끓기 시작해도, 큰 고기나 건더기 속은 늦게 데워질 수 있습니다. 영국 식품기준청이 온도를 음식의 가운데에서, 고기는 가장 두꺼운 부분에서 재라고 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국물과 건더기의 온도 차이를 실제로 잰 자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몇 도 차이가 난다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먹을 만큼만 덜어서 데우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영국 식품기준청은 남은 음식은 한 번만 데우라고 권고합니다. 냄비째 데웠다가 남은 걸 다시 식혀 넣는 반복이 왜 좋지 않은지는, 바로 다음에 말씀드릴 이야기와 연결됩니다.

돌솥에 담긴 김치찌개가 가장자리부터 가운데까지 전체가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찍은 사진
Photo: makafood / Pexels


팔팔 끓여도 남는 독소가 있습니다

이 글에서 가장 말씀드리고 싶은 대목입니다.

“다시 팔팔 끓이면 독소까지 다 없어진다”는 말을 들어보셨을 텐데요. 사실이 아닙니다.

먼저 말부터 정리하겠습니다. ‘사멸’은 살아 있는 균에 쓰는 말입니다. 독소는 균이 만들어 낸 물질이라 죽고 사는 대상이 아닙니다. 가열은 균을 죽이지만, 이미 만들어진 독소 가운데 일부는 가열로 파괴되지 않습니다.

황색포도상구균의 장독소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황색포도상구균이 만든 장독소는 100℃에서 30분간 가열해도 파괴되지 않는다.

이 식중독은 균 자체보다 음식 속에 미리 만들어진 독소를 먹어서 생깁니다(Kadariya, 2014). 그러니 음식이 이미 오염돼 독소가 생긴 뒤라면, 다시 끓여서 균을 죽여도 독소는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바실루스 세레우스의 구토독소

바실루스 세레우스가 만드는 구토독소(세레울라이드)는 더 단단합니다.

Rajkovic 등(2008)은 이 독소를 100·121·150℃에서 시험했는데, 모든 온도에서 열 안정성이 두드러졌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식품산업에서 쓰는 어떤 가열 처리로도 세레울라이드를 불활성화할 수 없으며, 식품 안전은 예방과 냉장 유지에 의존해야 한다.

끓여도 살아남는 아포

앞에서 본 퍼프린젠스, 그리고 세레우스는 아포 형태로 가열을 견딥니다. 그래서 데운 뒤 남은 걸 다시 천천히 식히면, 같은 일이 또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한 번에 먹을 만큼만 덜어 데우라는 권고는 이런 이유에서 나옵니다.

예외도 있습니다 — 퍼프린젠스는 조금 다릅니다

공정하게 말씀드리면, 모든 독소가 열에 강한 건 아닙니다.

퍼프린젠스의 장독소는 열에 약합니다. Naik과 Duncan(1978)의 연구에서는 60℃에서 5분 안에 생물학적 활성이 사라졌습니다. 게다가 미국 CDC는 퍼프린젠스가 사람이 먹은 뒤 몸 안에서 독소를 만든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니 퍼프린젠스에 대해서는 먹기 전에 충분히 데워 살아 있는 균을 줄이는 것이 분명히 의미가 있습니다. 식약처가 퍼프린젠스 자료에서 “독소가 파괴되도록 70℃ 이상으로 재가열”하라고 한 것도 이 맥락에서 읽어야 하는데요. 이 문장을 모든 식중독 독소로 넓히면 틀린 말이 됩니다.

가열로 줄일 수 있는 것(살아 있는 균·퍼프린젠스 장독소)과 가열로 해결되지 않는 것(황색포도상구균 장독소·세레울라이드·아포)을 두 칸으로 나눠 정리한 비교 카드

그래서 결론은 이것입니다

재가열은 제대로 보관한 음식에만 의미가 있습니다.

재가열은 살아 있는 균을 줄여줄 뿐, 이미 생긴 일부 독소는 끓여도 남습니다. 실온에 오래 방치했거나 보관 기간이 지난 음식을 다시 끓인다고 안전해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냄새나 맛이 괜찮은지는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끓여도 남는 독소가 있는 이상, 감각으로 판정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애매하면 버리는 것이 가장 확실한 선택입니다.


남은 국·찌개, 이렇게 처리하세요

여기까지를 한 번에 볼 수 있게 순서대로 정리했습니다.

  1. 식사가 끝나면 바로 식히기 시작합니다. 실온에 두는 시간은 2시간 이내, 32℃ 이상 더운 날은 1시간 이내(미국 CDC).
  2. 여러 개의 얕은 용기에 나눠 담습니다. 큰 냄비째 두지 않습니다.
  3. 찬물·얼음물을 채운 싱크대에 받쳐 저어가며 빨리 식힙니다.
  4. 5℃ 이하로 냉장합니다. 냉장고 온도는 온도계로 확인해 두면 좋습니다.
  5. 보관 기간을 정해 둡니다. 미국 농무부 3~4일, 영국 식품기준청 48시간. 그 안에 못 먹을 것 같으면 처음부터 냉동합니다.
  6. 먹을 만큼만 꺼내 한 번 데웁니다. 속까지 75℃ 이상, 국·찌개는 전체를 저어가며 끓어오를 때까지.
  7. 의심스러우면 버립니다. 실온에 2시간(더운 날 1시간) 넘게 둔 음식, 보관 기간이 지난 음식, 상태가 의심스러운 음식은 데우지 말고 버립니다.

더 조심해야 하는 분들

임신부(태아), 신생아, 고령자, 그리고 암·당뇨·신장질환을 앓고 있거나 장기이식을 받은 분처럼 면역이 약한 분들은 미국 FDA가 꼽는 리스테리아 고위험군입니다.

이런 분들이 드실 음식이라면 오래 둔 냉장 음식은 피하시고, 드실 때는 속까지 김이 날 정도로 충분히 데우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식중독이 의심될 때, 병원에 가야 하는 기준

식중독 증상은 보통 먹은 뒤 72시간 이내에 구토·설사·복통·발열로 나타납니다(서울대병원). 황색포도상구균 식중독은 30분~8시간 만에 갑자기 심한 메스꺼움과 구토로 시작하기도 합니다(MSD 매뉴얼).

가장 먼저 할 일은 수분 보충입니다. 지사제나 항생제를 임의로 드시는 건 권하지 않습니다. 서울대병원도 항생제는 혈변·점액변·발열이 있거나 고령·면역저하인 경우에 ‘고려’하는 수준으로 설명합니다. 판단은 진료 후에 하시는 게 맞습니다.

즉시 119 또는 응급실

  • 의식이 흐리거나 처지고 반응이 떨어질 때, 쓰러졌을 때
  • 물을 전혀 못 마실 정도로 계속 토하고, 소변이 거의 안 나오며 일어설 때 어지러울 때 (특히 영유아·고령자)
  • 혈변과 함께 고열이나 심한 복통이 있을 때
  • 영유아·임신부·고령자·면역저하자가 고열·심한 구토·설사로 급격히 나빠질 때
  • 심한 탈수로 기운이 없고 매우 창백하며 쓰러질 듯할 때

당일~수일 내 진료

  • 혈변 또는 점액변이 보일 때
  • 38.9℃가 넘는 고열이 있을 때
  • 설사가 3일 넘게 이어질 때
  • 토해서 수분을 유지할 수 없을 때
  • 소변이 줄고 입·목이 마르며 일어설 때 어지러운 탈수 징후가 있을 때
  • 임신부에게 발열·몸살 같은 증상이 있을 때
  • 고령자·면역저하자·만성질환자(당뇨·신장질환·암 치료 중 등)에게 설사·발열이 생겼을 때

집에서 경과 관찰 (위 증상이 생기면 바로 한 단계 올리세요)

  • 가벼운 설사·복통·메스꺼움이 있지만 물을 마실 수 있고 소변이 나오며, 열이 없거나 미열일 때
  • 수분·전해질 보충을 우선하고 기름지거나 자극적인 음식은 피합니다
  • 같은 음식을 먹은 가족에게도 증상이 생기는지 살피고, 남은 의심 음식은 먹지 말고 버립니다
  • 하루 이틀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거나 오히려 나빠지면 진료를 받으세요

아이가 설사를 하는 경우라면 탈수를 판단하는 기준이 어른과 조금 다릅니다. 따로 정리해 둔 글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정리하면, 남은 음식 식중독 예방은 이 세 가지입니다

  1. 위험은 냉장고에 들어가기 전입니다. 큰 냄비째 실온에서 천천히 식는 시간이 퍼프린젠스가 다시 깨어나는 시간입니다. 2시간 안에, 얕은 용기로 나눠, 찬물에 받쳐 빨리 식혀 넣으세요.
  2. 냉장은 늦출 뿐입니다. 일부 균은 냉장에서도 자라니 기간을 정해 두세요. 미국 농무부 3~4일, 영국 식품기준청 48시간, 그보다 길어지면 냉동입니다.
  3. 재가열은 필요조건이지 만능이 아닙니다. 속까지 75℃ 이상, 국·찌개는 끓어오를 때까지 데우되, 끓여도 남는 독소가 있으니 잘못 보관한 음식은 데우지 말고 버리세요.

오늘 저녁 국을 끓이신다면, 냄비 옆에 얕은 용기 몇 개를 미리 꺼내 두시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알아두실 점
이 글은 일반적인 식품안전·건강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의학적 진단·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식중독 증상이 심하거나 오래가면, 특히 영유아·임신부·고령자·만성질환자·면역저하자는 지체 없이 의료기관의 진료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요즘 국을 끓이면 불을 끄자마자 국자부터 듭니다.

냄비째 식히던 몇 시간이 사라졌고, 대신 얕은 용기 네 개가 싱크대 찬물 속에서 한동안 저어진 뒤 냉장고로 들어갑니다. 조금 번거롭습니다. 설거지도 늘었습니다.

그래도 다음 날 국을 데우면서 ‘이거 괜찮을까’ 하고 망설이는 일은 없어졌습니다. 안전은 데우는 순간이 아니라, 식히는 순간에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요.

흰 대리석 상판 위 흰 그릇에 담긴 맑은 국수 국물 한 그릇을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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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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